유등지에 같이 갔던 친구와 그날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다음 수요일은 반곡지 구경시켜 줄께.
너무 오래 사진 찍으러 못 나가서
번개 치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주부터 계속
친구들과 만나거나
목욕탕 가서 텀벙거리거나
팔에 알이 배기게 이 더운 날 스팀 청소기 돌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하필 번개가 수요일에 쳤습니다.
물론
친구와의 약속을 미뤄도
그 친구는 언제든지 그러라고 할 친구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날이 너무 더워
내심 걱정은 조금 됐습니다.
더운데 고생시키는 거 아니야?
유리알같은 물속에 반영이 너무나 깨끗했습니다.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깔고
반곡지의 짙푸른 초록을 바라보니
정말 친구에게 좋은 여름을 선물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못 속에서는
황소보다는 작은 황소개구리가
황소보다 큰 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꽥꽥 거렸습니다.
갑자기 캑 그러더니 소리가 없더구만요.
황소개구리 사래 걸렸나보다.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친구 혼자 놀라고 놔 두고
또 카메라 들고 돌아 다녔죠.
한참 설치고 친구 옆에 앉아서
실잠자리와 눈맞추기 했습니다.
무지 어렵더구만요.ㅎㅎㅎ
낙엽지는 가을에 또 오자 했습니다.
그리고 눈 덮힌 겨울에도 오자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걸에 앉아
그 나무 같은 친구와 폭염과는 아랑곳 없이
한 여름의 산들바람 같은 낮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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