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드레스를 입은 소녀 같은 아이를 만났어요.
웬만하면 빗속에 그것도 하산길에 지쳐서 못 담을 텐데
이 아이는 담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핑크드레스라 하니 여중시절이 생각납니다.
막 입학해서
그 학교엔 총각 영어 선생님이 계셨지요.
그 인기가 어떻했을지 짐작이 가시지요?
어느 이른 아침 등교길에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제 팔을 확 잡는 겁니다.
놀라서 돌아보니
오 마이 갓~~~
그 총각 영어 선생님이었어요.
지금도 가슴이 뛰네요. ㅎㅎㅎ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부르시며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으시데요.
아~~~
그때 좀 멋있게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이라든지 카프카의 성이라든지
그런 그럴듯한 책이름을 댔어야 했는데
제가 늘 어벙하잖아요.
생전 읽지도 않던 순정소설을 평생에 딱 한 권 읽어봤는데
그걸 말한 거예요.
핑크드레스...
선생님은 고전을 많이 읽으라시며
웃으시더라구요.
그날 이후
저는 영어가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순정소설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전만 읽었지요.
글씨체도 그 선생님 글씨체를 흉내내고
영어 발음도 R과 L을 정확히 구분하며 본토 발음에 가깝게 내려고 애쓰고
세상 없어도 영어는 꼭 공부하고 잠이 들었지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 과목을 잘 하려면 그 선생님을 좋아하라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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