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동안 몇 몇 역대 빈필 신년음악회를 봤습니다.
내 영혼까지는 병들지 않아서 끊임없이 영혼의 양식을 요구했기 때문에...ㅎㅎ
빈필, 빈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그 품위와 밝고 경쾌함으로 신년을 맞이하기에는 충분한 영혼의 양식입니다.
더구나 매 년 바뀌는 유명한 지휘자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쏠쏠한 재미입니다.
그들의 재치와 유머가 곁들여진 연주회는 그 품위와 인간미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아직 다 보지는 못했지만 모든 지휘자의 지휘를 다 봤다 해도
그 순위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연 카라얀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카리스마와 곡의 해석력을 갖고 있더군요.
그에게서 모든 음악이 스며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하나 재 해석이 되어.
그가 만족한 소리를 얻었을 때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아주 고된 훈련 끝에 얻는 달콤한 칭찬 같았습니다
1987년 카라얀이 지휘한 신년음악회는
그가 죽기 2년 전에 연주한 것으로 노장의 깊은 연륜과 완숙함이 묻어있었습니다.
그와 한 시대를 공유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ㅎㅎ
생각보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에게는 그 어떤 카리스마가 부족했습니다.
워낙 곡 해석을 잘 하는 단원들이니 그냥 둬둬 굴러가는 빈필 아닌가?
그래서인지 어떤 지휘자는 재롱 떠는 역할만 소화하는 듯한 인상도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정말 편견을 갖고 보지 않으려고 아주 객관적인 입장에서
2002년도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를 골라서 봤습니다.
정말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가 용수철 달린 인형처럼 머리를 흔들 때는 나도 모르게 아~~하는 비명이 터져나왔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새털같이 가벼운 몸짓과 표정, 한 마리 동물이 재주를 부리는 듯한...
더 이상은 인격적인 모독이 될 것 같아 자제하겠습니다.
그가 유명한 지휘자이고 뭔가 그 자리에 설만한 실력이 있었겠지만
그가 그 자리에 설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정명훈은 그 이유가 넘쳤을 듯도 합니다.
지휘하는 몸짓이야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가 지휘하는 음악이 어째 일본 군가처럼 들리는 것은 나의 지나친 편견일까요?
내 아들이 어렸을 적에 일본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2박 3일을 자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아이에 대해서는 아들의 친구이고 2박 3일이었지만
갈 때는 섭섭해서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나에게 편견이 있었다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죠.
품위와 인격은 꾸밀 수 없는 것이고
그냥 그 사람에게서 스며나오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생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ㅎㅎ
이상은 창 넓은 까페에 앉아 잔잔히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며
향 좋은 커피 한 잔이 간절히 그리웠던 몹시도 아팠던 내 며칠의 병상일기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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