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부부는 새벽기도 가시고
나는 카메라를 매고 새벽 섬을 돌았다.
저 밑으로 교회가 보였다.
풀을 뜯는 소와 같이 찍으니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목가적인 풍경이 연출 된다.
나를 하룻밤 재워주신 목사님 사택이다.
아주 깔끔하고 기분 좋았다.
어제 저녁엔 저기 마당에서
쇠고기 바베큐 파티도 했던 그곳.
높은 산을 기어올라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두미도의 아침이 시작된다.
아침 이슬에 흠뻑 젖은 광대나물과 잡초들은
보석으로 치장한 것 같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소유할 수 없고
세상 어느 것보다 맑고 투명한 보석 말이다.
아마도
아침 바다에 통통배가 고기를 잡으러 나가나보다.
거추장스러운 전깃줄은 모두 지우고
교회 사진 몇 장을 목사님께 보냈다.
좋아하시려나?
산비탈 꼭대기에 붉은작약밭을 발견하고 냅다 올라갔다.
한참을 찍고 있는데
오랫동안 울리지 않던 카톡이 날아왔다.
복주머니란 찾으러 가자고.
이런...
저 바다를 헤엄쳐 건널 수도 없고...
짙은 해무가 어제도 저녁때까지 깔려있더니
영 날아갈 생각을 않고 섬을 덮고 있다.
오늘은 두미도 남쪽을 돌기로 했다.
선착장까지는 목사님이 태워주셨다.
육지에서 들어온 배에서 할머니를 받아
집까지 태워 드린다.
그것이 목사님 부부의 일상인 것 같았다.
별 약속 없이 길을 지나다가 만나는 사람들 태워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거.
사모님은 섬에 있는 분들의 머리를 거의 다 염색해 드린다 했다.
이번에도 배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
그 할머니는 내가 지금껏 봐온 할머니들 중에
가장 긍정적이고 삶에 적극적인 할머니인 것 같았다.
전혀 삶에 힘들어 하지 않고
늙었다고 못한다 하지 않고
큰 프로판 가스 통을 거적에 담아 끌어서 부두까지 갖고 오고가는
그래도 하나도 불평하지 않고 그런 지혜를 기쁘게 생각하는
정말 너무나 사랑스러운 할머니였다.
섬을 돌아다니며 느끼는 것은
울릉도와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가파른 산길과 바닷물의 색깔까지.
섬이 원래 다 그런가?ㅎㅎ
해무가 끝까지 걷히지 않아
맑은 구름이 있는 하늘을 보지 못한 것이 약간의 아쉬움이다.
너무 사진만 찍으면
사진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 눈앞에 온통 산 중턱이 작약으로 덮힌 숲을 봤기 때문이다.
숲이 너무 우거지고 길이 없어 못 간다 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 새 내 키만큼 큰 풀숲을 헤치며
작약만 쳐다보며 올라가고 있었다.
섬 사람들의 인심은 아직도 후하다.
갓 잡은 도다리를 아낌없이 한 접시 회를 떠서
갑오징어 숙회와 함께 거침없이 내어준다.
뽈락 튀긴 것도 맛있게 먹었다.
목사님 사모님이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하시는 말씀을 뒤로 하고
섬을 떠났다.
이루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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