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두미도에 처음 왔을 때는
그리 또 오고싶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그래서 두미도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배에서 내리는 순간
내가 왜 두미도를 잊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섬집 담장에 피어있는 작약을 보며 좋아하니
마중 나오신 목사님이 아예 작약밭으로 데리고 가셨다.
작약밭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해야겠다.ㅎㅎ
저녁으로는 참돔회를 준비하신다 해서
침을 꼴깍 삼키며 섬 산책에 나섰다.
섬에 사는 주민도 많지 않고
드나드는 관광객도 적어서
섬은 그야말로 청정해역이었다.
멀리 보이는 섬 이름을 알뜰히도 물었었는데
살뜰히도 까먹었다.
아무튼 욕지도가 제일 큰 섬이고
여러 섬들이 있었다.
바다가 그리는 물길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지는 빛에 반짝이는 초록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리저리 각을 돌려 찍어봐도
반짝이는 그 초록을 잡아내지는 못한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황금빛의 바다가 장관이다.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마한 배는
기억 저편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았는데
대나무 밭이 있는 집 뒤 언덕에 올라
황금빛으로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붕붕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바람에 실려 울려왔었다.
나는 오늘 바라보는 해가 지는 풍경은
마흔 세 번을 보지 않아도 된다.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과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
서산으로 넘어가는 동그란 해를 찍고 싶었다.
조리개를 바짝 조이고
제발 퍼지지 말아라, 그랬더니
ㅎㅎ
동그랗게 나와 줬다.
바다에서 보는 일몰은 참 오랜만이다.
거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 꼭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망각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감동으로 채울 수 있으니...
해가 넘어간 새파란 하늘엔
내가 좋아하는 황진이의 눈썹같은 초승달이
소리없이 떠있었다.
회를 준비하고 계시는 목사님 댁으로 돌아와
바람 불고 쌀쌀하니 목사님이
통나무를 십자로 쪼개서
그 속에 불쏘시게를 넣고 모닥불을 피워주신다.
근데
정말 오늘의 최고의 이벤트였다.
너무나 멋지고
도시보다 많은 별들을 쳐다 보며
새롭게 아름답게 다가온 두미도의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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