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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캡틴! 나의 캡틴

잔잔한 감동

by 까탈스러운 장미 2023. 8. 29.

 

 

 

 

 

 

 

 

오늘은 옛날로 말하면 일직이고

요즘으로 말하면 근무조였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혼자 근무하게 될 줄은 몰랐지요.

누구라도 나올 줄 알았지...

 

 

 

 

 

 

 

나는 왜 맨날 이럴까요?

누구라도 나오면

같이 점심 시켜 먹으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안 나왔어요.

 

 

 

 

 

 

뭐 터키 여행에서 3kg를 불려 왔기 때문에

그 지방 녹여 칼로리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위는 그렇게나 오래 음식을 저장하지 못한다는 거지요.

 

 

 

커피 두 잔으로 위를 달래고

 

이때 하려고 미뤄 놨던 생활기록부에

행동발달상황을 기록했어요.

 

 

 

 

 

 

거의 퇴근시간이 다 되어갈 즈음

복도에 누군가 후다닥 뛰어오는 모습이 비쳤어요.

 

 

 

 

 

 

 

어~~작년 내 반이었던 효광이었어요.

 

 

효광이는 다문화가정의 아이었어요.

엄마가 일본인이고

아빠는 효광이가 두 살때 돌아가셨어요.

 

 

 

 

 

 

우리 말을 잘 못하는 엄마 밑에 컸기 때문에

말이 어눌하고

자연히 모든 것이 어둔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아이들이 많이 놀리고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어요.

 

 

 

 

 

하루는 효광이를 먼저 보내고

아이들에게 털어놨어요.

효광이 어머니는 일본인이시다.

그래서 효광이가 말이 어눌하다.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차근차근히 설명해주고 도와줘라.

부탁한다.

 

 

 

 

 

 

그때 착한 우리반 아이들이

작게 아~하는 탄성소리가 나왔어요.

저는 틀림없이 잘 도와주리라 믿었어요.

 

 

 

그리고 잘 도와 줬어요.

 

 

늘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던 효광이가

흘러내리는 허리춤을 쥐고 복도를 뛰어 다니고

단짝이던 친구와 치고 박고 싸우기도 했어요.

 

 

 

 

 

 

물론 불러서 야단을 쳤지만

저는 왠지 너무 기뻤어요.

그렇게 달라지며 밝게 변하는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어요.ㅎㅎ

 

 

 

 

 

 

그 녀석은 2학년이 되어서

항상 어디서 봤는지 저를 보면

꼭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와서 인사를 했지요.

 

 

 

 

 

저는 이름을 부르며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학선생님이 아니고...ㅎㅎㅎ

 

 

 

 

 

 

그 효광이가

교무실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와서는

작고 길다랗게 생긴

애플파이 세 개를 내 놓는 거였어요.

 

 

 

 

 

복지실에 왔다가

제가 근무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올라왔데요.

 

 

얼마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내려보내고 좀 있으니

효광이 어머니가 교무실 뒷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혼자 있다기에 보고 가려고 올라왔다고.

 

 

 

 

 

 

기말시험 때,

시험기간엔 학년을 섞어 시험을 치거든요.

제가 감독 들어간 반에 효광이가 있었어요.

OMR카드에 도장을 찍으며

효광이 머리만 쓰다듬어 줬지요.

 

 

 

 

 

그 작은 행동 하나에

이 녀석은 그렇게나 좋았나 봐요.

엄마한테

혜경쌤이 나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고

그렇게나 좋아하더래요.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그 붉은 눈시울이 저에겐

잔잔한 감동이었어요.

 

 

그 작은 것에 고마워하는 엄마와 아이...

 

 

 

 

 

효광이가 이렇게 밝게 잘 커 줘서 흐믓합니다.

그랬더니그 엄마가 흐믓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어요.

 

 

 

 

 

아직도 이렇게 우리말이 익숙치 않은 엄마가

혼자 아이를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효광이가 준 세 개의 애플파이를다 먹었어요.

아주, 아주 배가 불렀어요.

 

 

 

그 작은 파이 세 개가

커피 두 잔밖에 안 들어간 위를 이렇게 가득 채워 주다니요...

안 먹어도 배 부르단 말이 정말이네요.ㅎㅎ

 

 

 

 

 

2012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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