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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캡틴! 나의 캡틴

용 서

by 까탈스러운 장미 2012. 9. 21.

 

 

 

 

 

 

 

 

 

며칠 전 4교시였을 겁니다.

수업을 들어가니

맨 뒤에 앉은 여자 아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ㅎㅎㅎ

그럴 녀석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그 아이 옆으로 갔지요.

아이는 과학책을 얌전히 펴고 저를 태연히 쳐다 봤습니다.

 

 

이럴 땐 목소리를 내리 깔아야 합니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 알고 왔다. 다른 책 집어넣어라.

 

 

과학책인데요.

내가 집어낼까? 니가 집어 넣을래?

 

 

아이는 밑에 있는 책을 휙 집어 던지며

제가 속아주지 않는 것이 

아주 아주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럴 때 제가 열받으면 안 됩니다.

그래, 고맙다.

 

 

저는 다시 교단으로 갔지요.

밑에 책이 하나 더 깔려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 아이의 자존심을 뭉게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는 다시 다른 과목,  아마도 숙제였겠지요.

그것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갔지요.

아까 경고했지?

내 놔라.

아무 것도 없답니다.

 

 

저는 과학책을 들치고 밑에 깔아 놓은 책을 잡았습니다.

순간

아이도 그 책을 잡고 저를 한 방 칠 기세로

있는 힘을 다 해 뺏기지 않으려고 잡아 당겼습니다.

 

 

ㅎㅎ

저는 제가 그렇게 힘이 쎈 줄은 몰랐습니다.

기어이 제가 뺏었습니다.

벌점 3점이다.

교무실로 따라 와라.

 

 

저는 아이와 상담을 하고 벌점은 주지 않으려고 했지요.

아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담임에게 이야기하니

워낙 애를 먹이는 아이라

징계를 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징계 절차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이는 징계를 하면 저와는 아주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는 아이와 감정을 풀 기회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절대로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무실에 불려와 학생과로 넘겨지려는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한 번만 더 이야기 하자.

 

 

 

 

아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는 일단은 징계를 면하기 위해서

대충 저의 말을 듣는 척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별로 변한 것 없이 여전히 뒤에 앉아

옆에 짝과 엎드렸다 잡담을 하다 낄낄거리고 웃고

수업은 듣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반 전체가 너무나 수업분위기가 좋지 않아

지쳐 주저앉고 싶을 즈음

저는 허공을 향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 뒤에서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 아이였습니다.

 

 

아, 정말 그 아이였습니다.

마치 저에게

선생님, 힘 내세요.

그러는 것처럼 저를 보고 빙긋이 웃으며

정답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용서의 힘이라는 것이

이것이구나...

 

 

 

 

그 녀석은 요즘 꽤나 자주 질문을 합니다.

아마 놓친 세월을 따라 잡으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 성깔이라면 ㅎㅎㅎ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그때 저 위에 계신 분이 이렇게 가르쳐 주셨죠.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

 

 

저도 다만 이렇게 배웠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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