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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속의 이야기

고갈, 그리고 그 후...

by 까탈스러운 장미 2018. 12. 11.






얼마전 내 마음의 사랑이 고갈 되고

꽉 다문 수박풀처럼 그렇게 마음의 문이 닫혔던 때가 있었지요.




저에게 대들었던 그녀석은

그 다음 시간엔 의자 두 개를 맞대어 놓고 대자로 자더군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뭐, 저는 손해 볼 거 하나도 없지요.

안 배우는 지가 손해지.ㅎ



점심 시간에 그녀석과 맞닥드렸습니다.

저는 태연하게 유나는 아직도 쌤한테 삐쳤냐?

그랬지요.





녀석이 제가 먼저 말을 거니까 흠칫 놀라더군요.

그러면서 놀라지 않은 척 하면서

아니요, 저는 그런 거 상관 안 해요.

그러데요.




그래서 저도 상관치 않았습니다.

그 녀석은 알고 보니 2학년7반 반장이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 7반은 전대미문의 최악의 반으로 악명 높은 반이었습니다.




뭐, 제가 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지요.

그래도 이 나이에 뭐가 겁나겠습니까?

정말 그 반은 수업이 안 되는 반이었습니다.

무리를 지어 수업 시간에도 둘러 앉아 저희들끼리 웃고 장난치고

선생은 투명인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엎어져 자고.




저는 절대로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그건 아무 소득이 없는 거니까요.

나라도 상대방이 화내며 야단치면 엇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자는 아이들 깨우지요.

그러면서 그러지요.

세상에나 이렇게 잠 많을 나이에 뭐할라고 애들은 이렇게 교실에 가두어 놓고

공부를 시키나?



에구...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그래도 어쩌냐?

기왕에 교실에 앉아 할 일 없는데 과학이나 쉽게 공부하자.




저는 뭐부터 가르쳤냐 하면

해가 동에서 서로 진다는 것부터 가르쳤습니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ㅎ



그냥 매일 밤 눈에 보이는 달의 이름 가르쳐 주고

일식의 일자가 해를 뜻하고 월식의 월자가 달을 뜻하는 거라고...



며칠이 지나고 담임이 저에게 선생님, 경력이 얼마나 되십니까?

묻더군요.

그래서 꽤 되지요. 그랬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반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어떻게 지도 하기에 애들이 달라지냐고.




저는 화를 안 내서 그런가봐요. 그랬지요.

그리고...

정말 아이들이 제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그리고 질문까지 해요.



시험 치기 전 마지막 시간에는

유나가 책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와서 질문을 하더군요.

저는 눈꼽만큼도 감동 받지 않은 척 하면서 질문에 답해줬지요.

아구...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저, 무지 감동 받았어요. ㅎㅎㅎㅎㅎㅎ






그리고 오늘 1교시에 과학 시험을 쳤습니다.

제가 다른 반 감독을 하고 나오니까

유나랑 몇몇 아이들이 계단에 서서 선생님 답 가르쳐 주면 안 돼요?

그러더군요.



그래서 우린 계단에 쭈구리고 앉아 1번부터 25번까지 문제를 풀며 답을 매겼습니다.

유나가요 100점 받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 시간은 2학년 7반 감독이었습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이들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러데요...

시험 문제 쉽게 내 주어서 성적이 많이 올랐데요. ㅎ




교무실에 갔더니 교감 선생님이 과학 채점을 다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성적이 고르게 나와서 너무 고맙다네요.

교감 쌤이 과학쌤이거든요.

교감으로 승진하면서 그 자리를 제가 메꾼 거지요.



7반은 반평균이 다른 반보다 10점 이상 차이가 나서 늘 사유서를 써야했다더군요.

이번에 7반은 10점 이상 차이가 나기는 커녕 꼴찌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거의 기적이죠.



저는 그저 아이들이 밤에 달을 보면서

초승달과 그믐달을 구분하고 상현달과 하현달을 구분할 줄 알면 그걸로 족합니다.



이제 해가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것도 알았으니

어디 가서 무식하다고 놀림 당하지 않을 것이고.


물빛님~~~

어디 가서 돗자리 펴고 앉으셔도 되겠어요.

저는 정말 예상 하지 못했습니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빛님의 예상이 빗나갈 줄 알았지요. ㅎㅎㅎ



아마도 내 생애 마지막 교사로서의 생활이

이런 선물을 받으며 마무리 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적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 위에 계신분의 특권이니 또한 감사에 감사를 더할 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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