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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캡틴! 나의 캡틴

얼굴이 핼쓱

by 까탈스러운 장미 2017. 11. 23.









4교시였습니다.

아이들 점검하고, 요즘 아이들은 종이 쳐도 다 들어오지 않거든요,

그리고 수업을 막 하려는 순간

정말 번개 같았습니다.




맨 뒤에 앉은 두 녀석이 우당탕거리며

의자가 넘어지더니 아주 일방적으로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을 뒷목을 조르는 겁니다.

얼마나 살기가 돌던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달려가는 동안 빨리 말리라고 소리를 쳤지요.

제가 갔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은 녀석이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목을 조르고 있는 녀석은 그 반 실장이었고

당하고 있는 녀석은 그 반의 제일 깐죽거리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그런데 순간 제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당하는 그 말썽꾸러기녀석이 전혀 대항하지 않고 순순히 당하고 있었더라는 겁니다.

제 자리에 앉히고 수업은 끝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둘을 교무실로 불렀지요.





실장에게 왜냐고 물었지요.

지금까지 45번을 놀리는 것을 참았고 오늘은 다섯 번을 참았는데

결국 너무 화가 나서 싸웠다더군요.





아직 어린 녀석에겐 과한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에겐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쌤은 교회다니면서 배운 것이 있다.





누가 너에게 잘못을 하거든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마흔 다섯 번을 용서한 네가 참 대견하다만 기왕이면 끝까지 용서했으면

더 좋았겠다. 그래도 그만큼이라도 참은 것이 대단하구나.




이번 일은 수업 시간에 일어난 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께 알리는 것을 섭섭해 하지마라.




그리고 당한 녀석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물어보기도 전에 이녀석은 제가 놀려서 그랬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저는요 이녀석이 범상한 녀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기에 점심을 먹이려고 일단 점심 먹고 담임이 부르면 오라고 보냈습니다.




저는 이녀석이 점심을 먹으러 왔나 자꾸만 찾았습니다.

흰옷을 입었기 때문에 눈에 금방 뜨이거든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수능일이라 담임이 수능감독 가고 없어서 부장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즉시 불려오고 사건경위서를 쓰도록 하더군요.

실장녀석은 금방 써서 내고 당한 녀석은 몇 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석에게 가서 점심은 먹었나 물어보니까 안 먹었다더군요.

실장에게 점심 먹었냐 물어보니까 먹었다더군요.

저는 맞은 녀석이 맘이 쓰였습니다.

뭐 먹일 게 없나 가방을 뒤지니 사탕 하나가 나왔습니다.

갖다 주니까 아주 정중하게 괜찮습니다, 안 먹겠습니다.

그렇게 사양을 하더군요.




사건 경위서를 쓰고 앉아 있는 그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사 녀석은 아니다, 생각했습니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어른이라 하더라도 어떤 이유에서건 맞고 목졸리면

같이 한 방 때리고 치고 박는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인데

이녀석은 끝까지 그대로 당하고 있었거든요.

자신이 잘못했으니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 어린 녀석이 어떻게 그런 참음이 가능할까요?





어무튼 저는 너무나 놀라서 지금 얼굴이 핼쓱합니다.

아직도 몸이 후들거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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