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캡틴! 나의 캡틴

개구쟁이라도 좋다...

by 까탈스러운 장미 2023. 8. 8.

 

 

 

 

 

 

아침에 출근해서 반에 들어가다가

발에 본드가 붙은 듯이 멈춰섰습니다.

 

 

 

 

우리반 말썽꾸리기 다섯 명이 다 같이

사물함을 온통 꺼내 젖히고

물건을 교실 바닥에 다 늘어놨습니다.

 

 

 

 

아뿔사~~

제가 지난 금요일 종례를 하면서

다음 월요일에 사물함 검사를 한다 했거든요.

 

 

 

근데 그만 놀토를 지나면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요녀석들은 잊지도 않았어요.

 

 

들여다 보니

정말 이녀석들...

 

 

 

쓰레기가 반이고 남의 책과 문제집이 반이었어요.

교과서나 문제집이 없다고 징징 거렸던 녀석들이

그게 왜 거기 들어가 있냐고 낄낄거리며

자기 물건 찾아가는 거예요.

 

 

 

 

와~~ 정말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은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고 계신데

우리 반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지요.

 

 

 

 

그런데요,

제가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닌가봐요.

저는 그런 녀석들이

왜 그렇게도 가슴이 간질간질하게 사랑스러워 보이는지...

 

 

 

또 바보같이 왜 그것을 감추지 못하고 얼굴에 그냥 그대로 드러내는지...

 

 

그래도 할 수 없어요.

난 정말 이녀석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뼝아리 새끼들같이

삐약거리면서

뭐라고 서로 목소리를 높여 일러주려고 목을 빼는 모습까지도

난 정말 사랑스러워 그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요.

 

 

 

 

공부도 꼴찌고

학교에 돈 내는 것도 제일 꼴찌고.

 

 

 

오늘도 한 놈은 청소용구함 문짝을 내리 부숴버렸어요.

 

 

미래의 예비사기꾼도 있고 ㅎㅎㅎ

뇌수술을 세 번이나 해서 초등학교 2학년 수준밖에 되지 않는 특수아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아이는 저를 제일 사랑해요.

방학이 끝나고 만났을 때

봉투에 가득 하트를 붙여서 선생님이 보고싶었다고 편지를 줬던 녀석이니까요.

 

 

 

그리고 매일 과자며 사탕을 아침 자습시간에 두 손으로 줘요.

 

 

저는 그것을 매일 먹는답니다.

다 살이 찌는 것이지만 그리고 좋아하지 않는 것이지만

너무 맛이 있어요.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도 있어요.

엄마가 일본인인데 아이가 두 살때 아빠는 돌아가셨데요.

우리말도 아직도 서툰 녀석인데

자신감이 없어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다 그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해 줬더니

그녀석 지금은 복도를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다가

선생님한테 걸려서 혼나는 정도가 됐어요.

 

 

 

 

기말에 우리반이 결국은 꼴찌로 끝이 났지만

저는 그랬어요.

꼴찌는 용서하겠어. 하지만 기 죽는 건 용서 못해.

 

 

ㅎㅎㅎ

 

 

 

좋은 선생은 아니지요.

공부도 잘 하게 하고 인성도 바르게 해야 하는데...

 

 

 

 

처음에 죽은 듯이 기 죽어 책상에 붙어 있던 녀석들이

이제는

유리창도 깨고 청소 용구함도 부수고 복도도 전속력으로 뛰어다니지만

 

 

 

저는 속으로

그래, 잘 한다. 내 새끼들.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냥 그럽니다.ㅎㅎㅎ

 

 

 

2010년 9월 14일

 

'오,캡틴! 나의 캡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날  (2) 2023.08.09
To Sir, With Love  (6) 2023.08.08
비아그라 먹었습니다.  (2) 2023.08.06
제자 녀석 메일이 왔어요.  (2) 2023.08.06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리지 말라  (2) 2023.08.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