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삶속의 이야기

전설

by 까탈스러운 장미 2018. 3. 16.










작년에 만났던 그 자리에 건드리면 재가 될 것 같이 그렇게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쨘했습니다.




이 전설이 생각이 나서요.




어떤 마을에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동시에 좋아했지요.

 그 여인은 그 중 한 남자와 결혼을 했답니다.

첫 날 밤,  초록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신부는 뒷간 다니러 간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죠.




뒷간에 다녀오던 신랑은 신방 창호문에 칼날 그림자를 보고

연적이 자기를 죽이러 온 것으로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습니다.

그것은 마당의 대나무 잎의 그림자였는데요...



수십 년이 지나 그 집앞을 자니게 된 그 신랑이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집의 창호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자기의 아내였던 그 여인이 그날의 그모습 그대로 초록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앉아있는 겁니다.



깜짝 놀란 신랑은 미안함과 측은함에 그 여인의 어깨에 손을 대니

그 여인은 그제서야 초록재와 다홍재로 스러져 버렸답니다.




이 전설을 소재로 조지훈 시인은 석문이라는 시를 썼다고 하더군요.





석문(石門)/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 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열두 층계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섭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섭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내 삶속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내일 제주 가는데...  (0) 2018.03.19
형부  (0) 2018.03.17
구름이 아름다웠던 날의 성산일출봉  (0) 2018.03.16
이륙  (0) 2018.03.15
선유도  (0) 2018.03.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