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문을 여니
하얗게 핀 아까시나무 향이 은은히 들어왔어요.
그런데 저 멀리서 후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뭔가 있다, 그러고 카메라를 가지러 갔지요.
망원을 끼고 이러저리 살피는데
맙소사~~~
아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들판에 꽃을 찍으러 가면
이녀석들이 후두둑 나는 소리에 얼마나 놀라는지
그래서 그때마다
너, 까불면 잡아 먹는다
그랬던 아이인데
우째 우리 아파트 저 멀리 둑 밑에 있냐고요.
차를 타고 기행지를 옮길 때면
저 멀리 꿩이 보이면
맛있겠다, 그랬던 아이가요.
아주 어린 시절
국민학교 시절
어느 잔치 집에서 꿩탕을 먹었는데
그맛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너무너무 맛있었어요.
그렇지만
꿩 요리 잘 한다는 집에 가서 꿩요리를 먹어보고는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서
다시는 비싼 돈 주고 사 먹지는 않습니다.
저는 뭐, 청순가련 형이 아니라서
꿩을 보면 동물 보호 운동 한다고
꿩도 먹지 말자는 운동 같은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맛있겠다, 그러면서
기어기 가서 잡아 먹지도 않습니다. ㅎㅎㅎ
꿩을 정말 처음으로 확대해서 자세히 봤습니다.
그늘에, 그것도 잡풀이 우거져 있는 곳에 있는 녀석을
베란다 창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1시간 17분 동안
눈이 빠지게 찍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엄호를 잘 하는지
꼭 잡풀이 앞을 가리는 곳으로 들어가 있고
거리도 너무 멀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ㅎ
그런데 이녀석은 꼭 닭이 울다가 만 것처럼 울고
울 때는 이렇게 날개짓을 하더군요.
굉장히 화려한 아이더군요.
머리엔 황금색 모자를 쓰고
눈을 좀 잘 찍어보려고 해도
그늘이라 그닥 마음에 들게 찍지는 못했습니다.
빛이 좋은 곳에 있었으면
그 화려함이 확 드러났을 텐데
이 녀석이 바보는 아닌데
죽으려고 환한 밖으로 나오겠습니까?
바랄 걸 바라야지...
ㅎㅎㅎ
깃털도 너무나 화려해서
그야말로 바람둥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어요.
뭔가를 쪼아 먹는데
떨어진 열매들인 것 같아요.
놀라운 사실은 지금부터입니다.
저는 이 녀석이 이 좁은 창살 틈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 꼬리 좀 보세요.
꼭 뱀 같아요.
오늘은 집 베란다에서
1시간 17분 동안 꿩의 수컷, 장끼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이제 욕심을 좀 내자면
까투리가 새끼들 졸졸 달고 다니는 것을
찍어 보고 싶네요.
욕심이 좀 과하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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