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시간이 좀 지나서 열은 식었지만
그래도 가슴 철렁했던 그 충격은 아직 남아있어
그날의 저의 황당함을 여기 남기고 싶네요.ㅎㅎㅎ
동강의 할미꽃은 매일매일 올라오고
매일매일의 할미꽃이 진정 할미가 돼 가고 있는데
날씨와 여건을 따지면 갈 날은 하루도 나오지 않고
그래서
내비를 쳐보니 3시간 거리더구만요.
1분만 더 멀리 나왔어도 주저앉았을 텐데
3시간이면 갈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얼마 전 지인의 시모상에 가려고
검은 정장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데
난데 없이
짜라 짜라 짜짜짠~~
이러고 제가 연습하느라고 녹음했던 오카리나 소리가 나는겁니다.
기겁을 하고 폰을 꺼내서 꺼도 꺼지지 않고
한참을 애를 먹이더군요.
정말 머리가 하얗게 바래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상가에 문상하고 있는데 이랬으면
그 결례를 어떻게 수습했겠습니까?
놀란 가슴에 상가도 못가고 다음날 폰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폰이 내비만 켜면 벙어리가 되고
차량 충전도 안 되는 겁니다.
그래도 마음 먹은 김에 조용히 눈으로만 내비를 보면서 동강으로 달렸습니다.
그 쨍한 좋은 날 다 놔두고
하늘은 뿌옇고 구름은 한 점 없고
햇빛은 뿌연 구름속에 숨었고...
보케 반짝이는 동강할미꽃을 꼭 찍으리라 1년을 벼뤘는데
꿈은 사라졌습니다.
혼자 먼 길을 여행한다는 것은
약간의 자유로움의 설레임과
약간의 외로움의 두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도 혼자서도 잘 해요에 감탄을 하면서
동강할미들과 반가운 해후를 했습니다.
이 동강할미는 동강의 끝에서 만난 할미입니다.
연분홍 아직 18세의 수줍은 할미였습니다.
동강에 쭉 깔렸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슬그머니 겁이 나서 급하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갔더니
아직 다 나가지 않은 몇 몇의 사람들이 앞에 걸어가고 있더군요.
차를 타고 동강에서 길을 잃어보기로 했습니다.
오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았지요.
그것이 행운이었습니다.
길가에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연신 절벽을 향해서 셔터를 누르더군요.
일몰의 남은 빛에 귤암리 동강할미꽃이 보였습니다.
아, 난 거기가 귤암리인 것도 몰랐거든요.
근데 정신을 차리고 폰을 보니 밧데리 사용량이 15% 남았답니다.
제가 그랬잖아요. 이놈이 차량에서 충전이 안 되더라고...
요즘 신형 폰은 보조 밧데리도 없어요.
정말 난감했습니다.
어쨌든 밧데리 떨어지기 전에 고속도로에 올려야지요.
정선의 그 캄캄하고 인적도 차량의 통행도 없는 그 길을 아는 사람은 알 겁니다.
거기서 길을 잃으면 내비도 안 되지요, 통화도 안 되지요.
정선의 그 꼬불꼬불한 고갯길을 넘으며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그러면서 나타날 것만 같았습니다.
다행히 점심으로 먹으려던 떡 두 덩어리는
차에 내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으니
호랑이라도 나타나면 줄 떡은 있었습니다.
정선의 고갯길을 넘어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단양휴게소에 들어갔다 나오니
제 폰은 소리없이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부터는 분기점도 없고 아는 길이니 천만다행으로
호랑이도 안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년엔 휴대폰도 고쳤고 차량용 충전기도 샀고
동강에서 길 잃기는 안 해도 될 겁니다.
당연히 내년에도 이 예쁜 아이들 보러 갈 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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